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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 경주시

천룡사(경주)

업데이트 날짜: 2022-08-02

Description

[관광지]
처음으로 탑을 돌 때에는 원하여라,중생들이 복을 항상 베풀고 도의 뜻을 끝까지 통하기를. 탑을 세 번 돌 때는 원하여라, 중생들이 한결같은 뜻을 얻고 삼독(三毒)을 길이 끊기를.

한바탕 한여름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간 뒤 작은 계곡으로 변해있는 천룡사 오르는 산길엔 비에 떨어진 설익은 푸른 감이 뒹굴고 보랏빛 칡꽃 향기가 지천이다. 조금 숨이 가쁠 즈음 작은 산 능선을 오르면 넓은 구릉이 나오고 밭 사이 쓸쓸히 서 있는 천룡사지 삼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천룡사지 삼층 석탑은 고위산 등산로 길가에 있어 주변은 어수선했고 주위는 온통 밭으로 변해버려 이곳이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절터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서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高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룡사는 신라시대 때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는 두 딸을 가진 부모가 딸들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천룡사는 지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사찰이었다. 그것은 이 절이 계림(鷄林) 땅을 흐르는 한 줄기의 객수(客水)와 한 줄기의 역수(逆水)의 근원지에 있으면서 객수와 역수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위치에 있고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를 아는 당(唐)의 사자(使者) 악붕귀(樂鵬龜)는 “이 절을 파괴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신라 말기에 와서 어느 사이엔가 절이 폐사가가 되고 과연 나라도 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천룡사는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존숭되고 석가 만일도량(萬日道場)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 천룡사에서 열렸던 석가 만일도량에 관해서는 고려 때 최승로가 지은 글이 남아 있는데, 10,000일이면 거의 30년에 해당하는 셈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법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신라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룡사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의 재상 최승로의 아들 최제안이 천룡사를 중건한 이야기가 전하므로 고려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지만 그 뒤의 역사는 전혀 전하는 것이 없어 아쉬움을 준다. 현재 유일하게 옛 터에 남아있는 천룡사 삼층석탑은 본래 무너져 있던 것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발굴 조사하여 1991년 9월 25일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폐석탑이었던 이 탑이 복원되는 데는 용성(龍城) 스님의 유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용성스님은 호국호법도량 천룡사가 흥할 때 국가도 흥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나라 8백년 국운과 불법 중훙을 위해 천룡사 복원을 제자 동헌 스님에게 부촉했다.

그리고 동헌 스님으로부터 이 부촉을 이어받은 도문 스님은 20여년에 걸쳐 농가로 변한 천룡사지 6만여 평을 구입하였다. 축대석, 초석, 석당(石幢)의 귀부, 맷돌 등과 함께 폐탑의 부재들이 산재해 대가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빈터에서 석탑만이라도 먼저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기로 하고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주관하여 90년 11월 탑지 주변을 발론하고 91년 8월~9월에 복원 완공했다. 이 탑에는 정영호박사가 기증한 4과의 세존 진신사리를 순은으로 된 2중 원통형사리병과 백자로 된 사리함에 모셔 봉안했고, 호국호법 삼부경과 그외 경전과 소탑 및 순은판에 쓴 석탑복원 연기문을 함께 모셨다고 한다.

Information

Address: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백운대길 101-388 (38197)
data provided by Korea Tourism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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